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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삭은 한국 전통춤 멋.알리느 부산춤판 대모 김명자(김정수) 우봉이매방춤보존회회장

  • 관리자
  • 2015-05-21 19:25:08
  • 조회 : 3,653

곰삭은 한국 전통춤 멋·맛 알리는 부산춤판 대모

부산의 꾼­ - 김명자(김정수)우봉 이매방춤보존회장

기사내용

 
애절한 몸짓, 아스라한 손끝이다. 허공을 꺾고, 틀고, 던지고, 잡아채는 곰삭은 춤. 잔잔한 물살처럼 고요하다가도 깃털처럼 가볍게 무대를 박차고 오르는 경쾌함. 호흡조차 멈췄는가 싶은 순간 버선코 발끝은 사뿐, 허공에 추임새를 놓는다. 허공을 곡선으로 흩뿌리는 손끝부터 디딤새가 차진 발끝까지 흥과 신명, 애절함을 함께 녹여내는 완벽한 춤사위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제97호 살풀이춤 두 종목의 인간문화재 이매방(李梅芳) 선생의 춤이 그렇고, 그의 아내이자 춤꾼으로서 고스란히 그 춤사위를 이어받아 제자를 길러내는 김명자(金明子·73) 선생의 춤사위가 그러하다.






2014년 부산시 문화상 수상
김명자 선생은 부산 무용계에서, 넓게는 한국 무용계에서 존재감이 자못 크다. 이매방춤보존회 회장이자, 중요무형문화재인 이매방류 승무·살풀이춤 전수교육조교로 전국에서 100명이 넘는 전수자·이수자를 배출하며 우리 전통무용 전승에 공헌하고 있다. 부산 범일동에서 43년째 '이매방무용학원'을 운영하며 자신의 춤을 끊임없이 다듬고, 400여명에 달하는 제자를 배출했다. 개인춤판 16차례에, 이매방류 승무·살풀이춤의 대중화, 국제화를 위해 150여 차례의 공연을 기획하고, 무대에 섰다. 1997년부터 7년간 부산무용협회 부지회장을 맡아 부산춤판의 저변을 넓히고, 부산 전통춤의 예술적 가치를 높이는 데 온 힘을 쏟았다. 부산시는 지난해 그 공로를 인정해 제57회 부산시 문화상을 수여했다. 2004년 부산예총으로부터 제3회 부산예술상을 받은 데 이은 큰 영광이다.
"상은 생각도 안하고 있었어요. 이매방 선생의 제자이며, 아내로서, 또 이매방춤 전수교육조교로서 제가 좋아서 하는 일에 큰 상까지 받았으니 이보다 더 감사하고 좋을 순 없지요. 선생께 상을 받는다고 했더니 담담하게 그러냐고 하시더니 지인들에게 전해 들으니 다른 사람들한테는 자랑을 좀 하셨나 봐요. 우리 선생님은 평생 춤 외길, 예인의 길을 걸어오셔서 자유분방한 면도 있지만 엄격하면서도 자상하신 분이세요. 제가 춤을 추면서 칭찬을 들어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지만요."

김명자 선생은 인텔리 가정의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 어렵던 시절 일본 명치대학을 졸업하고 정부 산하 부처에서 공무원으로 일했다. 가정은 단란했고, 행복했다. 그러나 6·25전쟁은 그 단란하던 가정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김명자 선생은 인간문화재 이매방 선생의 아내이자 제자로 이매방류 승무·살풀이 춤 전수에 헌신하고 있다. 부산 범일동에서 43년째 '이매방무용학원'을 운영하며 자신의 춤을 끊임없이 다듬고, 400여명에 달하는 제자를 배출했다(사진은 김명자 선생이 제자들과 춤 연습을 하는 모습).
6·25가 앗아간 이산가족의 아픔
"어느날 빨갱이들이 아버지를 불러서 갔는데, 한복 바지저고리를 입은 그 길로 북으로 끌고 가버렸어요. 북송이 되고 만 것이지요. 전쟁이 끝나고 납치인사 명단에 아버지 이름이 있었는데, 그날 이후로 본 적도, 생사도 모릅니다. 그저, 돌아가셨거니 하고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그가 춤과 인연을 맺은 것도 이 같은 비극에서 시작됐다. 생활이 어려워진 어머니는 인천에 있던 작은 고모집에 자신을 맡겼고, 고모집 생활을 하면서 많은 한량 예술인들을 만났다. 고모는 예술애호가이자 멋쟁이였고, 여걸이었다. 인천으로 피난 온 당대의 명인·명무들을 집에서 재우고, 먹이고, 건사했다. 예인들은 어린 명자에게 아쟁, 가야금, 양금 등을 가르쳤다. 그때가 초등학교 4학년. 교장선생도 예술을 좋아하던 분이라 합주단을 만들고, 학예회를 열었다. 그는 고모집에서 쟁쟁한 어른들에게 이미 악기연주를 배운 터라 다른 친구들보다 실력이 월등했다. 당연히 칭찬이 따랐고, 기분이 좋았다. 어머니와 떨어져 있어 늘 그립고, 힘들었지만 자연스레 전통예술을 익힐 수 있었다. 
춤은 중학교 1학년 때 중요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 초대 인간문화재였던 이동안 선생에게 배웠다. 악기를 연주하는 것보다 춤이 좋았다. 이때부터 춤에 매료됐다. "돌이켜보면 참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초등학교 때 몸서리쳐지는 6·25를 겪었고, 고2 때 4·19를, 고3 때 5·16을 겪었으니 격변의 시대를 살아왔다 싶습니다."
전쟁통에 만난 명인명무 전통춤 사사
열세살이나 차이가 나는 이매방 선생과도 고모의 소개로 인연을 맺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용학원에서 배우고, 또 가르치며 지방은 물론 해외공연을 다녔다. 일본 공연을 다녀와서 어린시절 자신을 돌봐줬던 고모가 부산에 정착했기에 선물도 전하고, 얼굴에 생긴 화장독은 온천에서 치료하면 좋다는 얘기에 부산을 찾았다. 고모는 이매방 선생을 소개하며 인연을 엮어주려 애를 썼다. 그러나 춤추는 남자가 내키지 않았다. 예술애호가인 고모는 이매방의 춤을 높이 평가했다. 이매방 선생은 서울에서도 유명했다. 하지만 술을 너무 좋아한다는 둥 이런저런 얘기도 들었던 터라 결혼생각이 없었다. 고모는 질투하는 사람들의 얘기라며 맺어주려 애를 썼다.

"고모가 이매방 선생의 생일이라며, 그 뒤에 다시 불러서 갔는데 선생께서 몸살이 나서 누워 계신 겁니다. 측은하기도 하고, 안쓰러워 보이기도 하고, 고모의 추임새도 있고 해서 만난지 3개월 만에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임신을 했고요. 하나 뿐인 우리 딸 이현주(41)도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춤을 춥니다. 춤 밖에 모르는 가족이 된 거지요."





 
김명자 선생은 지금도 하루를 거르지 않고 춤을 연습한다. 연습을 안 하면 불안하고 게으름을 피우면 춤의 느낌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사진은 승무 공연 모습(왼쪽)과 살풀이춤 공연 모습).
이매방 선생과 맺은 부부 인연
결혼을 한 것이 1973년. 결혼과 함께 부산에 정착했다. 이때부터 또 다른 춤 인생이 시작됐다. 첫 스승인 국악인 고 이두철 선생을 시작으로, 무형문화재 고 이동만 선생의 문하에서 전통춤을 사사하고, 산조춤 명인 김진걸 선생께 안무지도를 받은 데 이어 이매방 선생을 남편이자 스승으로 모시게 된 것이다.
이매방 선생은 부산보다 다른 지역에서 춤을 가르쳤고 그는 1973년부터 10여년을 부산진시장에서, 그 후에는 데레사여고 근처로 이사해 지금까지 30년 넘게 한 자리에서 '이매방무용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이매방류 승무와 살풀이춤 전승자를 가르치는 전수교육조교다. 예전에는 입시생도 가르치고 이매방춤 이수자도 함께 가르쳤는데 10여년 전부터는 전승자만 가르치고 있다.
"남편으로는 편하지만, 스승으로서는 어렵고 조심스럽습니다. 춤에 있어서는 고집과 집념, 자신만의 세계가 확고한 분이셔서 배울 때 많이 힘들었어요. 작은 동작 하나라도 자신의 뜻대로 표현되지 않으면 호되게 야단을 치시니까."
그는 남편 이매방 선생을 "타고 난 춤꾼, 에너지가 넘치는 기인"이라 표현한다. 실제 이매방 선생은 "신이 추는 춤이지, 사람이 추는 춤이 아니다"는 세간의 평을 곧잘 듣는다. 천부적으로 타고 난 춤꾼이라는 것이다. 그런 남편이 자신에게 수없이 했던 말은 "곰삭은 춤을 춰라. 마음이 고와야 춤도 곱다"는 말이다. 그는 그 말을 철칙으로 알고 살아오고 있다. 배우면서 가르치고 그렇게 40년 넘는 세월이 흐르고 나니 이매방 춤의 깊은 맛과 멋을 이제야 알겠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연습 많이 하라고, 열심히 하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호흡이 중요한 우리 춤은 춤꾼의 몸에서 춤이 익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자신은 어렵게 배웠지만 제자들에겐 알기 쉽게 가르쳐 주려 한다.
요가로 하루 시작 … 하루도 거르지 않는 연습
그는 지금도 하루를 거르지 않고 춤을 연습한다. 연습을 안 하면 불안하다. 게으름을 피우면 춤의 느낌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새벽에 눈뜨자마자 하는 일은 요가다. 환갑이 되던 해부터 집 근처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9년을 배웠고, 지금은 집에서 혼자 요가를 한다. 하루라도 안하면 몸이 굳는다. 다리가 떨리고, 호흡이 가쁘다. 본인조차 만족하지 못하는 춤, 무슨 신명이 나서 추겠느냐고 스스로 반문한다. 매일같이 몸을 풀고, 연습을 해야 물 흐르듯 춤사위도 매끄럽다는 생각을 몸소 실천하는 것이다. 그는 이매방류 춤의 특징을 이렇게 풀이한다. "신명이 절로 난다. 발 디딤새가 차지다. 예사롭지 않은 멋이 있다. 사방으로 돌면서 추는 춤이라 어느 방향에서도 춤사위를 감상할 수 있다. 곡선의 미가 우주를 뒤덮는 듯 하다"고.
창작도 좋지만 한국춤의 원형과 기본을 보존하는 일도 중요한 만큼 제자들과 이매방춤의 원형보존과 확산을 위해 2년에 한 번씩 공연을 펼친다. 그는 2009년 서울 풍류극장에서 이매방류 승무·살풀이 원형춤 공연을 했던 기억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 창작을 전혀 가미하지 않은 원형을 그대로 살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추는 홀춤이 원형춤 공연이다. 이매방류 승무는 25분, 살풀이춤은 19분이 걸린다. 판소리의 완창무대와 같다. 원형춤 공연은 굉장한 마음가짐과 몰입이 필요하다. 그저 단순한 춤사위 동작만 해내는 게 아니라 깊은 내면의 세계를 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올해도 오는 9월쯤 공연을 열 계획이다. 하지만 문화회관의 대관이 싶지 않아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 오는 2월 16일부터 20일까지는 미국 LA문화원 공연이 잡혀 있다. 그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이매방춤을 올바르게 보존하고 후대까지 잘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변함없는 자신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인터뷰 하느라 늦어진 점심을 학원 옆 작은 식당에서 수제비 한 그릇으로 달래고, 서둘러 제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연습실로 걸음을 옮긴다. 이매방 선생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곰삭은 춤'을 추기 위해서는 하루도 게으름을 피울 수 없다며.
<자료출처: 부산광역시 인터넷신문 'BUVI News(부비뉴스)' http://news.busan.go.kr>
박재관 | 기사 입력 2015년 02월 06일 (금)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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