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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11월26일[컬쳐&피플] 80년 춤꾼 인생 … “마음이 고와야 춤도 고운법이여”(광주일보)

  • 관리자
  • 2014-10-07 19:25:08
  • 조회 : 1,529
[컬쳐&피플] 80년 춤꾼 인생 … “마음이 고와야 춤도 고운법이여”
국무(國舞) 이매방
2014년 11월 26일(수) 00:00
 



서울 자택에서 기자를 맞이한 이매방 선생은 허리가 아픈 탓에 침상에 앉아 있었다. 발걸음을 옮기면서 그는 연신 신음과 웅얼거림을 토해냈다. 젊은 시절 몸을 혹사한 탓에 관절과 뼈마디가 온 신경을 공격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럼에도 이매방 선생은 지난 8월10일 무대에서 춤을 췄다. 제자들과 함께 한 ‘우봉 이매방 전통춤 공연’이었다. 화려한 춤사위를 보여주지는 못했으나 앉아서 춤을 췄다.

“허리가 아파서 춤은 지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앉아서 했제. 육자배기 장단에 맞춰 춤췄어. 육자배기가 느린 진양조 아닌가. 그것 맞춰서 몇번 놀고 앉아서 한풀이 했제. 관객들이 좋아하더마. 지금도 마음껏 춤추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

‘국무’(國舞), ‘신이 내린 춤꾼’ 이매방 선생의 예술세계를 설명한다는 것은 사족(蛇足)이다. 한 예술인이 평생 하나도 갖기 어려운 무형문화재를 두 부문(중요무형문화재 27호 승무·제97호 살풀이춤)에서 보유하고 있다. 더 값진 것은 선생이 우리춤을 순정하게 지켜온 예인라는 데 있다. 그래서 제자들의 춤에서 섞는 게 보이면 육두문자를 곧잘 쓰곤한다. 서양춤 냄새가 날 때다. 

“내가 가르친 대로 안하고 요샛말로 서양 냄새가 나게 춤을 추니 욕을 할 수 밖에. 우리말에다 서양말 섞어놓으면 맛이 나는가. 웃긴 놈의 세상이여. 춤도 매한가지여. 알아야 면장도 하더라고 뭘 지대로 알고 해야 할 것 아니여.”

선생의 말은 지극히 평범했다. 그럼에도 진국이 그득 배어 나왔고 향이 짙었다. 83년 동안 춤으로 인생을 살아온 경험의 무게는 범접할 수 없는 ‘진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람을 보면 춤 재주를 알아. 보면 알제. 열심히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달라. 열심히 해야 춤이 늘고 춤이 몸에 들어간다니까. 헌둥만둥(하는 둥 마는 둥)하면 몇 년, 몇 십년해도 춤이 늘지 않아. 춤하고 인생도 똑같아. 노력하면 늘고 게으르면 늘지 않아. 스승과 제자는 엄해야 해. 부모 자식처럼 사랑을 주고 받지만, 가르칠 때는 치밀하게 명심하게 가르쳐야 해.”

이매방 선생은 우리춤 보존과 계승을 위해 지난 1951년 불과 25살에 전북 군산에 무용연구소를 개설한 이래 현재까지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면서도 선생은 “가르치면서도 배운다”는 전범을 실천했다. 지난 1948년 북 3개를 놓고 추는 삼고무를 창작했고 5고무, 7고무, 9고무, 11고무 까지 확대했다. 현재 국악계에서 선보이는 삼고무는 이매방류로 분류된다. 

승무는 이매방 선생의 트레이드 마크다. 국창 임방울 선생이 마련했던 무대에서 승무를 추기로 했던 주연급 국악인이 공연을 할 수 없게되자 대신 춤을 춘 것이 데뷔무대가 됐다. 

“승무는 춤의 뿌리여. 워낙 어려운 춤이기 때문에 배우기 어렵고 힘들어. 무거운 춤이어서 함부로 보여주지도 않아. 큰 행사서나 춤을 추곤하제. 그만큼 춤이 가치가 있고 무거워.”

목포에서 태어나 목포 공업학교를 졸업한 이매방 선생에게 춤은 운명이었다. 신내림을 받아야 살 수 있는 무기(舞氣)가 몸에 내린 탓이다. 아버지는 “집안이 망하려고 당골네 놈이 생겼다“며 한탄했다. 어머니의 사랑이 없었더라면 이매방 선생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어머니는 부친 몰래 그를 목포 권번(券番·일제 강점기 기생들의 단체)에 가도록 길을 터주었다.

평생 한 눈 팔지 않고 춤을 춰온 이 선생은 몸짓이 아니라 마음이 몸에서 우러나는 춤을 최고로 친다. 심무(心舞)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다. 마음과 정신이 맑고 깨끗한 경지에 있어야 춤이 된다는 얘기다.

“마음이 고와야 춤도 고운법이여. 한국 춤의 아름다움은 정중동(靜中動)에 있어. 우리 몸에서 배꼽이 중이지 배꼽 밑은 정이고 위는 동이야. 한국 전통춤의 멋은 기와지붕이나 한복의 선처럼 곡선의 아름다움이지. 관중이 천명이고 만명이고 간에 그 사람들을 잡았다 놨다 하면서 그 사람들 오장을 속속들이 후벼놓고 울려놔야 명창(名唱)이니 명무(名舞)니 하는 이름을 얻을 수 있는 것이지. 아무나 명창, 명무가 될 수는 없어.” 

/윤영기기자 penfoot@kwangju.co.kr 

/사진=최현배기자 cho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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